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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장발남자 붓글씨 먹과 구레나룻의 싸움

by 요블 2021. 8. 18.

코로나 시국으로 온 세계의 문화 예술 공연이 위축돼서 모두 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오랫동안 활동한 풍물단 역시 몇 달째 모임을 못해 공연은 커녕 연습도 못한 지 오래다.

지난주에 줌 모임에서 단장님께서 낭독 동화를 만들자고 하셨다.

작품은 오작교 아리랑

여러 번 봐온 공연이고 어떤 내용인지도 안다.

하지만 동화처럼 축소하여 한 문장씩 돌아가며 읽는 형식을 해보기는 처음이다.

무뚝뚝하지 않고 구술 동화를 잘 살려서 읽는 연습을 해본다.

역시 도서관에서 일하는 누나는 옥구슬처럼 잘 읽으신다.

 

그리고 과제를 주셨다.

오작교 아리랑의 제목을 각자 꾸며보고 문장에 어울리는 그림도 매주 그리는 것

그리고 모아서 내가 편집할 예정이다.

 

한주가 다시 자나고 화요일 오늘 오작교 아리랑 제목을 꾸며보기로 했다.

오늘까지 제출이다.

미루고 미루다 한국화 배운 것이 생각나서 집에 있던 여동생의 문방사우를 꺼냈다.

 

검은 획이 그어진 연습용으로 사용한 노랗게 빛바랜 신문지가 나온다. 

무려 2002년도 4월 23일의 동아일보다.

b6의 자동차 면에는 현대차 미돌풍 1등 공신은 소비자 분석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있다.

b4의 주식면에는 월요일의 종합주가지수 코스피가 920.89로 지수 1000선도 안 되는 시기임을 알려준다.

저 때도 탈모로 인해 많은 분들이 가발을 찾는지 하이모 광고가 있다.

모델은 누구였을까?

 

동아일보2002년

 

 

 

2002년도 신문이 도구함에서 나왔으니 이 도구들은 20년을 채워가는 중이다.

내가 고등학생 때 중학생인 여동생이 사용했구나.

학교 다니며 언제 서예 수업을 마지막으로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먹을 이리저리 갈아서 서툴지만 붓에서 나오는 진한 획을 긋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한 시기였다.

 

다른 도구들을 살펴봤다.

동생이 연습하던 화선지와 얼룩이 조금 뭍은 새 화선지가 있다.

그러나 접힌 지 오래되어 구불구불 주름이 많다.

한 자루의 붓은 검게 물들어 굳어 있다.

먹을 머금은 채 말려도 되는 건가 하며 흐르는 물에 씻기니 다시 부드러워졌다.

검은 먹물이 끝도 없이 나와서 내 손과 하얀 세면대를 검게 물들였다.

잘 안 지워져서 당황했지만 청소솔로 빡빡 문질러 닦았다.

먹은 끝부분에 금이 가 있지만 단단하다.

한자가 두 글자 적혀있다.

직사각형의 벼루는 코팅? 이 벗겨진 부분이 있지만 금 간 곳은 없고 묵직하며 튼튼하다.

먹물 통은 다 쓴 건지 마른 건지 비어있다.

납작한 도자기 연적과 네모 막대 모양의 녹이 슬지 않아 은색으로 빛나는 금속 문진도 있다.

 

벼루를 씻고 물을 조금 담아 먹을 갈아보았다.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먹이 갈린다.

한국화 수업 때는 시간 상의 문제로 먹물을 부어 썼는데 먹을 갈아 보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그리고 아카데미 수업을 통해 최근 재미를 들였는데 시간 나면 심신안정을 위해 자주 갈 것 같다.

이 정도 갈았으면 되었을까 생각하며 붓에 먹을 적셨다.

생각보다 많은 물을 머금는다.

물의 양이 많지는 않지만 연습하고 완성시킬 정도로는 충분한 듯하다.

신문지에 획을 그었다.

신문에 인쇄된 글자가 보일 정도로 아직 묽다.

손이 아플 정도로 한참 더 갈았다.

먹이 갈리며 가장 가리가 깎여 나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붓에 먹을 흡수시켜서 연습용 화선지에 획을 그었다.

꽤 진하게 색이 나오니 연습을 이어갔다.

 

화선지는 매끈한 면과 거친 면이 있다.

제조 공정 상 서로 다른 질감의 면이 나온다고 한다. 

보통 매끈한 면을 앞으로 지정하고 위로 오게 놓고 그 위에 그린다.

먹이 덜 번지고 붓 획이 지나간 자리에 곧게 나온다.

하지만 거친 면에 그려 다른 느낌을 내기 위해 뒤집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오작교 아리랑을 한글로 적다가 오작교는 한자로 적어봤다.

까치 작의 오른쪽 부수는 새 조이다.

그런데 까마귀 오의 한자와는 매우 비슷하나 가로 획 한 개가 없다.

하마터면 같은 줄 알고 똑같이 쓸 뻔했다.

 

아리랑을 영어로도 적어봤다.

한자는 대부분의 획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기에 붓의 움직임이 불편하지 않았는데

arirang 영어 알파벳은 아래를 찍고 다시 위로 올라가서 곡선을 그리는 부분이 많아

붓으로 쓰기에 어색함을 느꼈다.

캘리 하는 분들은 잘 그리는 듯하던데 큰 붓이라 그런가 이상했다.

 

쓰다가 바닥에 깔아 놓은 신문 밖으로 튀었다.

급히 닦는데 번진다.

신문을 넓게 펴지 않은 것이 문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 듯 사전 준비가 미흡하면 이런 일이 생긴다.

그래도 물 묻혀 지우니 지워진다.

 

연습은 끝났고 줌 회의 30분을 남기고 과제용으로 그리기 위해 마음을 잡았다.

스캔을 해서 보내야 한다.

오랜만에 장발 머선일 유튜브 채널에 올릴 겸 삼각대를 놓고 영상도 촬영했다.

 

붓글씨 연습

 

까마귀 오 까치 작 다리 교 

정신일도 하사불성 차 소리 매미소리 개소리에도 흔들리지 않고 쓰기는 개뿔 오타가 났다.

'리'를 적어야 하는데 '라'를 적었다.

순간의 행동을 섣불리 판단하고 탄성을 질렀다.

조금만 더 차분히 생각하면 이런 일에 대해 유연하게 넘어갈 수 있을 텐데 

마음공부는 역시 쉽지 않다는 것을 또 느낀다.

 

화선지 붓글씨

 

붓글씨 연습...

울퉁불퉁한 화선지 거친 붓획

많이 모자란 모양

실수라고 생각한 탄식을 다시 담지는 못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닫다.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만 찾느냐 아라리요 스리랑 포켓몬 아라리도 있다.

 

먹이 진할까 나의 구레나룻이 더 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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